흙은 땅을 갈아선 살아나지 않는다

흙은 땅을 갈아선 살아나지 않는다

흙을 살리는 법, 우리는 그동안 잘못 배워왔다. 농사의 출발점은 작물이 아니라 흙이다. 트랙터로 깊게 갈아엎고, 축분퇴비를 퍼붓는 일이 흙을 살리는 일이라 믿어왔지만— 그때부터 흙은 천천히 죽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은 오랫동안 정답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농업기술센터의 교육자료에도, TV 농사 프로그램에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땅은 갈수록 지치고, 비료는 점점 더 많이 들어가고, 작물은 더 자주 병든다.

 

삐딱하게 보자. 그건 살리는 게 아니라 억지로 숨 쉬게 하는 인공호흡일지도 모른다. 흙을 살리는 건 사람의 힘이나 기계의 힘이 아니다. 흙 안에 사는 미생물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흙은 살아난다. 그래서 무경운 농법이 다시 주목받는 것이다.


땅을 갈지 않고 뿌리를 키우는 농사

갈지 않는 대신 초생재배가 있다. 초생재배란 땅을 맨몸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녹비작물을 함께 키우며 땅을 돌보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녹비작물은 호밀이다.

 

호밀은 단단한 땅을 뚫고 들어가 깊게 뿌리를 내린다. 이 뿌리는 땅속에 숨구멍을 만들어주고, 죽은 뒤에는 자연스레 삭아 영양분이 된다. 지상부는 베어 눕히면 멀칭재로 훌륭하다. 따로 자재를 살 필요도 없다.

 

흔히 농사는 봄에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농사의 시작은 가을이다. 추수를 마친 텃밭을 정리하고, 녹비작물을 심어 겨울 전에 두툼하게 입혀주는 것. 그것이 다음 해 봄, 밭갈이 노동을 줄이는 지혜다.

 

삐딱하게 말하자. 뿌리에게 일을 맡기자. 뿌리는 인간보다 훨씬 정직하고 부지런하다.

호밀뿌리

 


흙을 일구는 건 뿌리다

흙은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다. 비료가 흙을 살리는 것도 아니다. 흙을 만드는 건 식물의 뿌리다. 뿌리는 자라는 동안 흙을 밀고 뚫고 들어가 숨구멍을 만들고, 미생물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생명이 다한 뒤에는 미생물의 먹이가 되어 부식으로 바뀌고, 끝내 검고 살아 있는 흙이 된다.

 

수명이 다한 줄기와 나뭇잎 또한 흙 위로 떨어져 다시 생명의 먹이가 되고, 돌고 돌아 흙으로 돌아온다. 이 순환의 중심엔 언제나 뿌리가 있다.

 

정말이지, 그 어떤 농기계도 이 일을 대신할 수 없다.


뿌리를 키우는 농사, 흙을 살리는 반란

농사는 땅을 다스리는 일이 아니다. 땅과 공존하는 일이다. 비료와 기계로 해결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떻게 잘 키울까'보다 '어떻게 흙을 살릴까'를 먼저 묻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농부다.

 

우리는 지금도 '더 좋은 비료', '더 깊게 가는 쟁기'를 찾고 있다. 하지만 흙은 그런 방식에 이미 충분히 지쳤다.

삐딱하게 다시 묻자. 정말로 흙을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흙을 만드는 건 뿌리다. 뿌리를 키우는 농사는, 흙을 살리는 조용한 반란이다.

흙은 우리가 만든다고 믿는 순간부터 죽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