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수염을 키워 밭에 보내다 – 상토 실험기

감자 수염을 키워 밭에 보내다 – 상토 실험기

감자는 생육기간이 짧은 작물이다.
중부지방 기준으로 심으면 약 100일 남짓.
그 안에 싹을 틔우고, 줄기를 키우고, 감자알까지 맺어야 한다.
그래서 씨감자의 초기 활착이 수확량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번엔 조금 삐딱한 실험을 해봤다.
씨감자를 상토 속에 묻어 보름 동안 키워본 것.
그리고 며칠 전 꺼낸 순간, 나는 산신령의 수염을 보았다.


감자 수염의 정체, 그건 뿌리였다

상토 속에 묻어둔 씨감자는
땅속인 줄 알고 뿌리를 뻗기 시작했다.
그 뿌리는 하얗고 굵었으며, 아래로 깊게 내려갔다.
정말 산신령의 수염처럼 인상적이었다.

비교를 위해 빛에만 노출시켜 싹만 틔운 씨감자도 함께 준비했는데,
차이는 극명했다.
하나는 싹만 올라왔고,
다른 하나는 뿌리까지 왕성하게 자라 있었다.


뿌리부터 준비된 감자, 왜 중요한가?

감자는 줄기작물이다.
이파리에서 이루어지는 광합성으로 전분이 만들어지고,
그 전분이 줄기 아래 감자알로 저장된다.
즉, 빠른 뿌리 내림과 싹 출현이 곧 수확량과 직결된다.

상토 속에 씨감자를 묻어 뿌리를 먼저 자라게 하면,
밭에 옮긴 뒤에도 활착이 빠르고 줄기 성장이 왕성해진다.
이렇게 튼튼한 시작이 결국 수확에서 차이를 만든다.


스티로폼 상자 속 실험

나는 이번 실험에 23cm 정사각 스티로폼 박스를 사용했다.
상토를 넣고 씨감자를 하나씩 심은 뒤,
햇볕 드는 베란다에 두고 밤엔 실내로 들였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어 조심스럽게 관리했다.

청명 즈음, 바깥으로 내보낼 계획이다.
햇살과 바람 속에서 본격적인 성장을 기대하며.
하지 무렵이면 그 진가가 드러날 것이다.


소규모 텃밭에 딱 맞는 방식

씨감자 20개면 고랑 하나(약 5m)를 충분히 채운다.
소규모 텃밭이라면 이 방식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
지금 시도해도 늦지 않았다.

베란다에서 뿌리를 틔우고,
봄바람이 불 때 밭으로 보내는 것이다.
감자의 준비 운동, 우리가 도와주면
그다음은 감자가 알아서 한다.


🥔 삐딱한 결론

감자는 흙 속에서만 준비되는 게 아니다.
베란다 속 상토에서도 생명을 틔운다.

뿌리를 내리고, 싹을 올리고,
빛을 먹고, 감자를 만든다.
우리가 씨감자의 몸을 풀어주는 순간,
텃밭의 봄도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