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키워야 흙이 산다 – 자연을 닮은 농사의 시작
초록을 갈색 죽음으로 내모는 인간의 욕심
풀은 토양이 입어야 할 녹색 옷이다.
하지만 일부 농업 관행은 그 옷을 벗기려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비닐을 덮거나 제초제를 뿌리는 일이 반복된다.
제초제는 초록을 갈색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누렇게 주저앉은 땅뿐이다.
운 좋은 몇몇 작물만이 겨우 고개를 든다.
초록을 지우고 내 작물만 키우겠다는 마음,
그 이기심이 제초제라는 이름으로 땅에 쏟아지고 있다.
풀을 키워야 흙이 살아난다
풀은 본능적으로 뿌리를 깊게 내린다.
그 뿌리는 단단한 토양의 숨통을 틔워준다.
숨길이 열린 땅은 양분과 수분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작물이 보다 쉽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게 한다.
풀은 비바람에 의한 토양 침식을 막아주고,
벌레와 작물과 함께 공동체를 이룬다.
풀을 무작정 키우자는 게 아니다.
'잡초경합한계기간' 내에서 풀을 관리하며 키우자는 것이다.
잡초경합한계기간을 아는 지혜
잡초경합한계기간이란,
작물이 풀에 가려 햇빛과 통풍에 지장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을 말한다.
이 시기에 풀을 베어 땅에 덮어주면 된다.
풀과 경쟁하는 대신, 풀과 타협하는 방법이다.
자연은 한 번도 농약으로 해충을 처단하거나,
제초제로 풀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모든 생명은 어울려 살도록 자리를 내줬을 뿐이다.
풀을 키우면 얻는 것들
풀은 생명체를 품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포유동물까지,
모든 생명의 먹이사슬이 풀에서 시작된다.
풀은 가뭄과 홍수를 막아준다.
지표면을 덮은 풀잎은 빗물의 타격을 막아 토양 유실을 방지하고,
뿌리는 흙알갱이를 단단히 움켜쥐어 땅을 지킨다.
풀뿌리가 만든 땅속의 미로는
물길이 되고, 공기의 나들목이 되고,
토양미생물의 이동 통로가 된다.
한마디로, 풀은 땅의 숨통이다.
죽어서도 살아 있는 풀
풀은 죽어서도 역할을 다한다.
땅에 스며들어 거름이 되고,
다음 생명을 키우는 양분이 된다.
풀을 키우면 갈아엎는 노동이 줄고,
경반층(딱딱한 땅층)도 자연스럽게 감소한다.
풀이 지표면을 덮어주니 비닐 멀칭도 필요 없다.
초생재배가 어려운 곳은 낙엽이나 농사 부산물로 대체할 수 있다.
이 또한 순환의 큰 축이다.
토양 자생력은 점점 높아지고,
건강한 먹을거리는 덤으로 따라온다.
생산량 감소도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자연은 상생을 가르친다
자연은 농약을 만들지 않았다.
자연은 제초제를 발명한 적도 없다.
단지 생긴 대로 어울려 살아가게 내버려두었을 뿐이다.
풀을 없애는 데 힘을 쏟기보다,
풀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이다.
풀을 키우고, 풀과 타협하는 것.
이런 착한 발상이 텃밭에도, 들판에도,
생명을 다시 모이게 한다.
맺음말
풀을 키우는 일은
흙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결국 우리 자신을 살리는 일이다.
텃밭에 초록을 입히는 작은 움직임이
지구살림의 큰 순환을 시작하게 만든다.
오늘도 풀과 함께 숨 쉬는 텃밭을 꿈꾼다.
'흙왈농사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람에서 무덤까지, 흙이 품는 생명의 순환 (0) | 2025.04.15 |
---|---|
효과적인 가뭄 대책 – 흙 속에 물을 저장하라 (0) | 2025.04.14 |
도시농업의 매력과 가치⑩ (0) | 2025.04.10 |
도시농업의 매력과 가치⑨ (1) | 2025.04.09 |
도시농업의 매력과 가치⑧ (0) | 2025.04.08 |